Love, Free, Happiness, Courage, Faith, Belief, and Life.
나는 언제나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다. 그리고 언제나 뛸 준비가 되어있다.
@ sharin




걸레의 탄생, 그리고 진화. 삶의 語錄

예전, 초등학교 시절에 학교에서 대청소를 한답시고, 한달에 한번 정도 걸레를 가져오라고 한적 있다.
그때는 집에 있는 지저분한 걸레를 가져가기도 뭣하고, 엄마한테 걸레를 하나 만들어 달래기도 뭣해서,
늘 문방구에 파는 작은 하얀색 걸레를 사가지고 가곤 했다.

그러고 보면, 정말 집에 있는 걸레는 찢어진 런닝, 낡아서 헤벌래진 셔츠,
그것도 아니면 찢어진 행주이거나 수건들이 걸레로 쓰이곤 했는데,
그 걸레는 빨아도 삶아도 그 색깔과 냄새는 늘 눅눅하고 케케했다.

한번은 할머님께서 오래된 명주천으로 걸레를 삼으셨는데, 얼마나 깨끗이 닦이던지.
비싼게 다르다며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부렸는데, 왠걸? 스팀청소기로 스팀으로 닦는 걸레가 나오자,
한방에 지워지는것을 보면서 걸레의 진화를 느낀다고나 할까..

예전에, 질나쁜 아이를 '걸레'라고 놀리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제 그말은 참 부적절하다 싶으다.
아니 예전에도 그말은 부적절하다 싶으다.

엄마의 걸레는 한톨의 씨앗으로 부터 목화가 피고 거두어져 면사로 직조되고 속옷으로 만들어진 이후 걸레로 집안 곳곳을 살려내기까지 가장 알뜰한 형태로 최초의 씨앗과 꽃에 대한 예의를 다한 셈이다.

퀴퀴하면서도 어딘지 흙냄새를 닮아있는,
걸레 냄새는 시들어가는 것과 피는 것의 순환을 담지한 냄새다.

<김선우의 사물들> 중에서


이 글을 읽고서는 걸레가 더럽고, 눅눅하고, 지저분하다 생각은 날아가버린다.
오히려 예전의 엄마가 무릎을 굻고, 걸레질을 하는 그 풍경에서, 무언가 모를 향수가 느껴진다고 할까.
물론, 엄마의 무릎과 허리는 그때문에 아프셨는지 몰라도..
걸레질에 대한 그 아련한 향수가 오늘따라 문득 느껴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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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이피 2007/01/24 01:13 # 삭제 답글

    걸레도 언젠가는 기술의 발전에 밀려 영영 사라지겠지요. 그런 '사라져 가는 것'은 언제까지나 그리울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 저공비행사 2007/01/25 23:13 # 답글

    이피/ 그렇죠. 늘 사라져가는것에 대한 섭섭하고도 애뜻한 마음이 드는건 어쩔수 없는거 같아요..
  • 저공비행사 2007/02/12 13:31 # 답글

    걸래/ 죄송합니다. 아무말없이 핸폰번호 이렇게 두신거, 지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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