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04일
박주영 『백수생활백서』
나는 책 읽기를 좋아하지만 책이라면 무엇이든 상관없이 읽는다는 주의는 아니다. 좋아하는 것일수록 사람들의 취향은 까다로워지고 선택은 복잡해지기 마련이다. 많이 보고 많이 겪은 사람들은 눈이 높아진다.(중략)
사실 책에 대한 취향은 사람에 대한 취향과 비슷한 데가 있다. 책의 경우에도 첫눈에 반할 수 있고, 남들이 좋다고 해서 나도 기대했다가 실망할 수도 있다.(중략)
오직 나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듯한 사람이 세상에 있다면 아마도 오직 나만을 위해서 쓰인 듯한 책도 있지 않을까. 나는 어쩌면 그런 책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 p.94
가끔 생각한다.
어쩌면 무언가에 사로잡혔던 그때의 내가 더 행복했을지도 모른다고.
열광이 사라진 후 남는 공허보다는.
그래서 가끔 생각해 본다.
열일곱 시절부터 내가 열광해 온 것이 여전히 살아남아 있는지.
서너 개쯤. 나쁘지 않다. 그래, 나쁘지 않다
학교라는 공간은 우리의 우열을 갈라놓았고 아이들은 여전히 쓸데도 없는 많은 것들을 학교 수업을 통해 배우고, 알아서 좋을 것 없는 악랄한 경쟁의 법칙들을 학교를 통해 일찍이 체득하고 있다. 그리고 세상도 학교랑 그리 다르지 않다는 걸 이제는 안다. 백이면 많은 것들이 손쉽게 해결되고,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으며, 쌈 잘하고 목소리 큰 인간들이라면 다들 슬슬 피해 다닌다. 어쩌면 우리는 아직도 여전히 세상이라는 학교와 대항하는 아이들일지도 모른다.
오늘과 내일이 그리 다를 것도 없는 삶을 살면서도
이 정도면 괜찮다고, 나쁘지 않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사는 것보다는
힘든 상황에서도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곳이 있는 삶이 낫고,
그저 묵묵히 견디고 참아가면서 사는 것보다는
단번에 부수어버리고 떠날 수 있는 삶이 낫다고 생각해.
서두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평생 해야 할 일이고 평생 즐겨야 할 일이다.
조급해한다면 계속할 수도 없고 이 일의 참다운 의미를 잃어버리는 게 될 것이다.
어차피 미래 따윈 현재보다 중요한 적 없었다.
쓰고 있는 지금 행복하다면, 읽고 있는 지금 행복하다면 그걸로도 완벽한 것 아닐까.
상처 주고 상처 입히고 싸우고 설득하고 오해하고 이해하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배신하고 떠나고 죽는 것이 세상이라면 그런 세상 따위는 알고 싶지 않다. 책 속에도 너무 많은 죽음이 있고 너무 많은 사랑이 있고 너무 많은 이별이 있으며 너무 많은 슬픔과 분노와 기쁨이 있다. 때로는 완전히 타인인 것처럼. 독서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세상이다. 책을 탁 하고 덮는 순간 그 세상의 문이 완전히 닫히는 건 아니지만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어둠 정도는 견딜 수 있을 만큼 나는 강하다. - p.202
최대의 복수는 적 없이도 행복해져서 적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 p.236
소설에는 철학도 있고 여행도 있고 인문학적 지식도 있고 과학도 있고 역사도 있고 우주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설에는 항상 사람이 있다. 나는 소설이 가진 포괄성과 유연성이 아주 마음에 든다. 가능하다면 나는 소설 같은 인간이 되고 싶다. - p.325
나한테는 이미 익숙해진 읽기와 이해의 방식이 있다. 책을 읽듯 사람을 읽는다. 그는 한 번 읽는 걸로는 충분하지 않은 책은 책이다. 처음 읽으면 이야기가 보이고, 두 번 읽으면 인물이 살아나고, 세 번 읽으면 배경이 그려지고, 네 번 읽으면 움직임이 읽히고, 다섯 번 읽으면 낱말 하나하나가 다르게 다가와서 세월을 두도두고 읽어야만 하는 책, 나는 그를 다시 읽게 될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 나에게 다른 건 몰라도 시간은 있다. - p.327
# by | 2007/10/04 23:51 | L ★ 밑줄긋기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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